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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바람...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6 군웅할거시대를 평정한 새로운 혈통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6 군웅할거시대를 평정한 새로운 혈통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베스파시아누스는 태어날 때부터 거창한 신분의 인물이 아니었다. 차근차근 바닥부터 한단계 한단계 밟아 네로가 죽은 후,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에 의해 혼란한 로마를 수습할 인물로 선택되어 로마의 황제에까지 즉위하게 되는 인물이다. 지금부터 당시 로마의 혼란했던 정세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베스파시아누스는 세리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게 되는데, 신분상 로마제국 권력층 최상부에 오르기는 어려웠다. 자신의 형을 따라 공직에 입문해 36년에 트라키아 지방에서 군복무를 하고, 감사관으로 선출되어 크레타섬과 키레네에서 근무한다. 이후 39년에는 조영관, 40년에는 법무관에 선출된다. 41년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5 로마의 별이 되고자 했던 황제, 네로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5 로마의 별이 되고자 했던 황제, 네로 클라우디우스가 아그리피나에 의해 독살된 후,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로 등극시킨다. 그 때 네로의 나이 16세였다. 네로는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가 멀리 유배를 떠나게 되었고, 네로의 친부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결국 네로의 숙모인 레피다에게 맡겨진다. 레피다 역시 살뜰히 챙겨 보살피지 않았고, 무용수나 이발사 교육을 시켰다. 클라우디우스에 의해 유배지에서 로마로 돌아온 아그리피나의 권력이 강해지자, 네로도 로마로 돌아와 좋은 생활을 누리게 되었고, 황제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즉위 초기의 네로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자신은 녹음 덮힌 언덕에 누워 시나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4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4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 로마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제정으로 들어서고 난 후, 그의 혈통에 의해 그 권력이 계속해서 옮겨지게 되는데, 그 황제들을 모두 이야기하자면 그 양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그들에 대해 정~말 간략하게 줄여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아우구스투스가 죽고 난 후, 그를 이어 황위에 오른 사람은 그의 양자인 티베리우스다. 티베리우스는 기원전 13년에 29세의 나이로 집정관에 오르게 되고, 기원전 6년에는 후계자 문제가 거론되자 원로원과 세간에 생겨날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자진해서 공직에서 물러나 로도스 섬에서 조용히 지내다, 4년 후에 로마로 복귀한다. 서기 14년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하고,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친 손자였던 가이우스와..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3 로마의 진정한 1인자, 아우구스투스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3 로마의 진정한 1인자,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이후, 카이사르의 유언장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어린 소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7세에 맞서 권력을 거머쥔 소년. 그 소년이 바로 후에 '아우구스투스', '존엄한 자'로 불리우게 되는 옥타비아누스다. 옥타비아누스는 어릴 때부터 로마를 떠나 외국에서 생활했다. 몸은 비록 강건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영리하고 총명했다. 카이사르는 나이는 어리지만 그러한 기질을 가진 옥타비아누스를 눈여겨보고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하고, 자신의 오른팔인 안토니우스에게 자신의 죽으면 유언을 전하도록 한다. 여기에 옥타비아누스의 약점인 전사로써의 기질을 보완해주기 위해 최고의 장군감이었떤 아그리파를 친구이자 그를 보좌할 인물로 그의 옆에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2 악티움 해전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2 악티움 해전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의 제 2차 삼두동맹이 맺어지지만 이내 붕괴되고, 로마의 1인자가 되기 위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다. 이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게 되면서 로마의 초대 황제에 오르게 되는데, 그 계기가 된 악티움 해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카이사르는 자신의 권력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암살되기 전, 그의 권력과 재산을 그의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 유언의 집행인으로 안토니우스를 임명하게 된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를 도와 갈리아 정복을 일선에서 이끈 최고의 장수중 한명으로 카이사르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사람이다. 하지만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1 로마의 제정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1 로마의 제정 로마가 공화정 체제를 마무리하고 제정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이름 역시 로마제국으로 불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로마제국은 옥타비아누스, 즉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시작한 기원전 27년부터 로마가 몰락할 때까지를 일컫는다. 로마제국은 지중해 동부의 헬레니즘 문화권과 이집트, 유대, 옛 카르타고, 히스파냐, 갈리아 등 기존 영토를 포함하여,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다키아 지방까지 그 영토를 확대했다. 이 영향으로 로마는 굉장히 부유해지게 되었으며, 로마제국의 문화를 지중해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되어, 로마제국의 건축과 법, 정치 등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게 되었다. 제정시대부터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황제라는 직책은 이전 공화정 시대에 있었던 호민관과 집정관의 특권을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7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下)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7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下)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어록으로 마무리했던 지난 글에 계속 이어나가 볼까요? 카이사르가 로마로 진격해 들어오자 이때부터 본격적인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간의 내전이 시작되게 된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의 군대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로마를 모두 불태우고, 외부로 나가 전열을 가다듬기로 했다. 갈리아 정복을 끝낸 카이사르의 군대는 곧 배가 고플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이것이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카이사르와 마찬가지로 여러 전투를 통해 경험을 쌓은 폼페이우스는 계속해서 시간을 끌고자 했으나, 성격 급한 귀족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카이사르 군에 선공하게 된다. 이로써 카이사르보다 몇배나 되는..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6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上)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6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上) 서양사 사상 가장 큰 영향을 남긴 사람 중의 한 명인 로마 출생의 이 사람. 바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영어로 읽으면 그 이름도 유명한 시저다.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집정관이 되어 민중들의 큰 인기를 얻은 사람이다. 능력만으로 본다면 연설력, 정치력, 군사 지휘능력...뭐 하나 빠지는게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인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능력자에게는 비극적 최후가 다가오더라는 사실...어쨋든 지금부터 로마 공화정 말기, 가장 재미있는 인물 중 한명인 카이사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카이사르는 굉장히 유서 깊은 귀족 집안에서 기..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5 3차 포에니 전쟁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5 3차 포에니 전쟁 바로 3차 포에니 전쟁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구요~!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는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 일리리아, 시리아로 그 영토를 확대했고 히스파냐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다. 전쟁에 패배한 카르타고는 매년 로마에 물어야만 하는 막대한 배상금에 고통받고 있었다. 이런 고통을 안고 카르타고는 지중해 상에서 아프리카의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활용, 해상무역을 활발하게 하였고, 기원전 156년 이후부터 불과 5년만에 전쟁의 상처를 없애고 예전 못지않은 강성한 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로마는 카르타고의 이웃나라인 누미디아에 카르타고의 선박과 영토를 약탈하라는 은밀한 제안을 했고, 누미디아는 로마의 후원을 등에 업고 주기적으로 카르타고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4 2차 포에니 전쟁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4 2차 포에니 전쟁 지난회에 이어 포에니 전쟁 중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제 2차 포에니 전쟁 이야기로 바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닷~! 기원전 218년 5월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 한니발은 보병 5만, 기병 9천,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피레네 산맥을 넘었고, 로마는 이에 대응하여 2개의 군대를 편성하여 시칠리아와 미실리아에 파견했다. 한니발은 로마가 생각지 못했던 갈리아를 가로질러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의 북쪽을 공격했다. 하지만 험준한 땅을 가로지르면서 그 병력이 보명 2만, 기병 6천으로 줄어있었다. 기원전 218년 11월에 로마군과 카르타고 군은 티키누스에서 처음 만났다. 티키누스 전투에서 당시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