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5 로마의 별이 되고자 했던 황제, 네로
네로
클라우디우스가 아그리피나에 의해 독살된 후,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로 등극시킨다. 그 때 네로의 나이 16세였다. 네로는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가 멀리 유배를 떠나게 되었고, 네로의 친부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결국 네로의 숙모인 레피다에게 맡겨진다. 레피다 역시 살뜰히 챙겨 보살피지 않았고, 무용수나 이발사 교육을 시켰다. 클라우디우스에 의해 유배지에서 로마로 돌아온 아그리피나의 권력이 강해지자, 네로도 로마로 돌아와 좋은 생활을 누리게 되었고, 황제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즉위 초기의 네로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자신은 녹음 덮힌 언덕에 누워 시나 음악을 즐기며 사는게 적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그리피나는 네로에게 황제는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리이며,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도 시와 음악 같은 예술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넘어간 네로는 결국 황제가 되었고, 등극한 후 자신의 방식으로 예술혼을 펼쳐내기 시작한다.
네로는 자신을 황제라고 생각하기보다 대중의 스타라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욕망이 더 컸다고도 할 수 있다. 자신만이 가진 미학의 세계에 사는 예술가라기보다 대중의 환호와 애정을 먹고 사는 스타 말이다. 원로원이나 민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도 시적인 운율을 구사했고, 그의 스승인 세네카의 도움 덕분에 내용적으로도 알찬 연설을 할 수 있었으며 그로써 민중들로부터 많은 갈채를 받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환호하는 대중들에게 거액의 돈을 뿌리기도 했다. 이러한 네로의 행동을 원로원들은 황제답지 못하고 경박하다며 탐탁치 않게 여겼다. 하지만 당시를 함께 살았던 작가 수에토니우스와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네로의 목소리, 시의 수준은 형편없었으나 청중들이 황제의 무력과 돈 때문에 마지못해 환호를 보냈다고 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후에는 자신의 공연이 환호하지 않거나 비웃음을 보내는 사람들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수에토니우스는 네로가 자신의 공연을 더 멋지게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계속했다는 점 만큼은 인정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일련의 행사들의 규모가 커져갔고, 단순한 공연 뿐만 아니라 전차경주, 검투사 경기, 웅변경연, 연주경연 등 수많은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다 극장이 부족하게 되면 로마 전역에 수많은 극장과 경기장을 새로 지었다. 이러한 행사들은 처음엔 5년 단위로 열렸닥. 나중에는 매년 열렸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어느덧 로마 제국 전체의 재정상황이 크게 악화되었다. 일반적으로 폭군들은 전쟁을 취미처럼 여기고, 전쟁에 막대한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네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폭군과는 또 다른 형태의 폭군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네로 재위 기간동안 한번도 전쟁을 벌이지 않았고, 오히려 적대국인 파르티아의 왕자를 로마로 초대하고 크게 베풀어, 파르티아와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파르티아는 네로가 죽은 이후에도 그에게 경의를 표할 정도였다. 내정 역시 나쁘진 않았다. 친서민 정책을 펼치면서 평민들 사이에서는 그의 인기가 드높았다.
네로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주는 아그리피나
그러다 59년 큰 사건이 하나 터지는데, 네로의 최측근들이 그를 이간질 해 어머니인 아그리피나를 죽인 것이다. 당시 아그리피나는 황제 못지 않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네로 최측근들의 모략이었다. 다른 이야기로는 아그리피나가 점차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을 보고 네로 대신 새로 결혼한 자신의 남편을 황제로 세우려는 음모가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어쨋든 네로는 결국 아그리피나를 암살하게 되는데, 어머니를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일까? 천성적으로 소심했던 네로는 그 때부터 조금씩 망상에 시달리게 된다. 이때부터 네로는 이전과는 다르게 폭력과 탄압을 펼치게 된다. 탄압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어머니를 죽였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덜 하기 위해 공연과 축제를 더 늘리려 했지만 더 이상 재정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때문에 반역이 의심되는 자들을 처형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재정을 확보하고 그것으로 공연과 축제에 쏟아부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귀족들, 원로들과의 사이가 급격하게 나빠지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서민들 사이에서 네로의 인기는 유지되고 있었다.
로마 대화재
하지만 64년 또 한번 사고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사건으로 네로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로마에서 발생한 대화재다. 이 대화재로 인해 로마의 3분의 2이상이 불탔다. 여기서 정설로 전해지고 있었던 것은 네로가 자신이 생각한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일부러 로마에 불을 질렀고,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며 음악을 연주하며 시를 읊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도시가 불타는 것을 바라보며 자신의 침통한 마음을 표현한 시를 읊은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이 이야기도 일부에서는 부정되고 있다. 그 이유는 네로가 불을 질렀다면 자신의 보물들, 수집품들은 지켜야 했을텐데, 이 화재로 인해 자신이 수집했던 물건들 대부분이 다 타버렸고, 전해지는 이야기와는 다르게 네로가 화재 진압과 이재민 구호를 위해 모든 히믈 쏟아부었다는 점 때문이다. 비록 예술에 빠져 살기는 했지만, 네로가 그 정도로 미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자의 이야기가 화재의 불길이 번지듯, 퍼져나갔고 그 분노를 모조리 네로를 향해 쏟아붓게 된다. 네로는 자신을 향한 의혹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네로 자신의 평가를 더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았다.
대화재 이후 네로는 더욱 잔인해지기 시작한다. 반역혐의자 뿐만 아니라 황제를 조롱한다거나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거나 하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다. 다시 한번 귀족들과 지식인들에게 자결을 강요하고, 그들의 재산뿐만 아니라 신전의 보물까지 몰수하는데, 네로는 이 재물을 이용하여 황금궁전을 지으려고 하였다. 화재 전의 로마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컸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네로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이러한 시기가 로마에 도래하면서 60년에는 브리타니아, 66년에는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나 로마군이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국방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전염병까지 돌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민심은 완전히 네로를 외면한다. 결국 갈리아에서 반란이 일어나, 로마의 에스파냐 지역 총독이었던 갈바를 황제로 추대하기에 이른다. 네로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지만 이 군대마저 반란군 편으로 돌아서버린다.
로마로 진격하는 반란군 소식에 네로는 갈팡질팡하다 로마를 버린 채, 네 명의 하인들을 대동하여 로마 교외의 작은 별장으로 피신한다. 이 때 하인중 한명이 네로에게 어차피 반란군에게 붙잡혀 갖은 능욕을 당하다 고통스럽게 죽느니 자살을 선택하라며 칼을 건네주는데, 이에 칼을 받아든 네로는 '위대한 예술가가 이렇게 사라지는구나'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결한다. 이 때 네로의 나이 31세였다. 네로의 마지막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네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황제이기 이전에 예술가, 그 이전에 민중들의 스타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처럼 생각이 든다. 어쨋든 예술을 사랑한 로마의 황제는 이렇게 사라지게 된다. 네로가 죽은 후,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핏줄이 완전히 끊어지게 되는데, 이때부터 로마 전국 각지의 장군들이 일어나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하며 들고 일어나게 되고, 커다란 혼란이 찾아오게 된다.
네로 황제가 위대한 황제였다고 보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폭군이라고 불릴 필요까지 있을까? 분명 지금까지 보아온 황제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다르게 말하면 네로가 다른 황제들보다 조금은 더 인간적인 황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의 심약한 한 사람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그 무거운 지게를 지고 있었으니, 말년에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예를 들며, 그는 그렇게 했는데 라고 이야기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사람이 다 같을 순 없다. 민중들의 인기만은 최고였던 네로였다. 네로가 만일 귀족들, 지식인들,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미운털이 박히지만 않았더라도 지금까지 전해지는 오명은 없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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