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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바람...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3 1차 포에니 전쟁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3 1차 포에니 전쟁 이 전쟁은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싸움으로 로마인이 카르타고를 세운 페니키아인을 포에니라고 부른데서 유래하였다.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세기에 걸쳐 총 3차례에 걸쳐 있었던 전쟁이다. 지금부터 포에니 전쟁에 대해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자. 제 1차 포에니 전쟁은 시칠리아를 무대로 한다. 시칠리아의 북동단에 위치한 그리스 식민지인 메사나를 둘러싼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 벌어진 전쟁이다. 기원전 264년 라틴계 출신으로만 구성된 용병단이 그리스계 민족이었던 메사나 주민들의 호의를 얻어 그들을 도시 내에 받아들였으나, 도시에 들어온 용병들이 메사나를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기로 하면서 한밤 중에 메사나 주민들..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2 로마 공화정의 변화와 그 이유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2 로마 공화정의 변화와 그 이유 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초기의 공화정에서는 왕정의 몰락으로 소수 혈통 귀족에게 그 권력이 이양되었다. 기원전 5세기 중엽, 집정관이라는 고위 정무관직이 등장했으며, 임기는 1년이었고 두 사람을 선출했다. 이를 이두정치라고 하며, 원로원은 이때까지도 자문기구에 지나지 않았고, 켄투리아회는 선거, 입법, 재판 등의 기능을 수행했다. 로마에는 시민계급으로 귀족과 평민 두 계급이 존재했는데, 공화정 출범 당시의 귀족계급은 굉장히 폐쇄적인 형태였으며, 후에 평민 계급은 이에 반발하여 사회정의를 요구했다. 초기에는 모든 공직이 귀족들에게만 열려있었고, 평민이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때의 로마는 계속된 군사정복을 통해 이탈리아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1 로마 공화정의 형태와 구성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1 로마 공화정의 형태와 구성 고대 로마에서 공화정은 기원전 510년 경에 시작되었고 이후 약 450여년 간 공화정이 지속되었다. 로마 공화정은 권력의 분리, 견제와 균형 원칙에 따라 등장한 복합적인 정치체제였다. 오랜 세월동안 귀족과 명문가 출신이 아닌 평민들의 정치 투쟁을 통해 계속 발전했다. 초기 공화정은 왕정시대에 기원들 두고 있는 귀족들이 통치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들이 정부를 장악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법이 철폐되고 평민출신도 출세를 할 수 있었다. 그로써 신귀족이 등장하게 된다. 로마의 공화정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에 의해 우수한 정치체제로 찬사를 받은바 있다. 하지만 초기의 로마 공화정은 과두정(寡頭政)의 모습을 띄었으며, 현재의 민주..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1 로마 왕정의 시작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1 로마 왕정의 시작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로물루스가 로마를 창건한 이래 기원전 509년까지 약 250년간 왕정이 이어졌다. 정확하게 남아있는 사료는 아니지만 전승에 따르면 로물루스를 포함하여 총 7명의 왕이 로마를 통치했다고 전해지는데, 처음 네명의 왕은 로물루스, 누마 폼필리우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마르키우스 였으며, 다음 세 왕은 에트루리아인으로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였다. 이 일곱명의 인물이 다스리던 시기를 로마 왕정 시대라고 부른다. 이 전에 이야기 했듯이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팔라티노 언덕을 수도로 삼아 로마를 건국한다. 로물루스가 일곱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하고..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0 고대 로마의 건국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0 고대 로마의 건국 로마는 누구나 알다시피 시조인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에 의해 건국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마디로 이야기하기엔 너무나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물론 전설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주고자 한다. 옛날 로마에서 남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알바 호반, 현재의 카스텔 간돌포 지방에 트로이 전쟁에서 패한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도망쳐오게 된다. 그렇게 그 곳에 자리잡고 살면서 나라를 건국한다. 그 나라에서 아들인 아스카니우스가 떨어져 나와 근처에 '알바롱가'라는 도시를 세운다. 아스카니우스에 의해 알바롱가라는 나라가 들어서고 약 400년 후, 알바롱가의 수도인 '라티움.. 더보기
[영국] 영국의 영웅, 허레이쇼 넬슨 [영국] 영국의 영웅, 허레이쇼 넬슨(Viscount Horatio Nelson, 1758.9.29~1805.10.21) 영국의 제독이었던 넬슨은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전쟁에 참전했고, 코르시카 섬 점령,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도 수훈을 세웠다. 프랑스 함대와 대결하는 가장 중심인물이었으며 트라팔가 해협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 함대를 격멸시켜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에 비견될 만큼 영국에서는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 받고 있으며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넬슨은 1758년 9월 29일 영국 잉글랜드 동부 노퍽(Norfork) 북부 버넘소프(Bunham Thorpe)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는 영국 초대 총리를 역임했던 로버트 월플(Sir Robert Walpole) 경의 외사촌 조카 손.. 더보기
[프랑스]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 [프랑스]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c) 1337년 시작된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왕위 계승권 분쟁으로 시작된 백년전쟁. 그 전쟁은 이후 116년간 계속 되었다. 이 전쟁의 주요 전장이 프랑스였기 때문에 프랑스 땅과 시민들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시민들은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는 중에 자연스럽게 보다 근대적인 국가의식과 애국심이 생겨났고 백년전쟁의 막바지에는 이런 의식의 변화 속에서 잔 다르크라는 인물이 나타나게 된다. 백년전쟁의 시작 당시,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후사없이 죽자 카페왕조의 직계가 끊어지게 되었고, 프랑크 왕국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살리카 법전에 의하면 여성은 왕위계승권에서 제외되게 되어있어 혼란이 찾아왔다. 샤를 4세 사후.. 더보기
[영국] 명예혁명과 권리장전(Bill of Rights) [영국] 명예혁명과 권리장전(Bill of Rights) 앞서 권리청원을 설명할 때, 이야기 했듯이 권리청원이 청교도혁명과 관련이 있다면, 이 권리장전은 영국의 명예혁명과 관련이 깊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장전을 이야기 하기 전에 명예혁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수가 없다. 명예혁명은 1660년 왕정복고에 의해 성립된 체제의 정치적, 종교적 탄압정치를 타도한 것이다. 제임스 2세가 즉위한 후 국왕의 힘을 강화하여 공공연히 영국 국교회를 배제하고 카톨릭화 정책을 진행하였다. 이것에 대해 의회의 주권을 제창한 휘그당, 토리당 뿐만 아니라 국교회 성직자들도 그와 뜻을 달리하였으며, 의회 두 당의 대표자들은 제임스 2세의 장녀 메리와 그 남편인 네덜란드 총독인 오렌지공 윌리엄에게 영국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더보기
[유럽] 백년전쟁 [유럽] 백년전쟁 백년전쟁은 말 그대로 약 100년, 정확히 116년 간 이어졌던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 전쟁의 당사자는 바로 영국과 프랑스로 대부분의 전투는 프랑스 땅에서 벌어졌다. 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왕위 계승 다툼, 둘째는 플랑드르 지방을 둘러싼 양국의 경제적인 이해관계 때문이다. 전쟁은 1328년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죽은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 당시에는 한 나라의 왕이더라도 자신의 나라 밖에서 다른 나라 왕에게 봉토를 수여받고 작위를 받으면 그 나라의 신하가 될 수도 있었다. 당시 잉글랜드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이것을 이용하여 잉글랜드의 왕이었던 에드워드 3세가 자신이 프랑스 왕위의 계승자임을 자처하고 나선다. 그는 .. 더보기
[영국]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 1628) [영국]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 1628) 권리장전은 명예혁명과 관련을 갖는 것인데 반해 권리청원은 청교도혁명과 큰 관련을 가지는 인권선언이다. 1337년 시작된 백년전쟁과 1455년 장미전쟁 이후 봉건체제가 무너지고 영국 국교회의 정착으로 영국내 교황권이 몰락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대표되는 튜더 왕조는 중앙집권화를 이뤄냈다. 그러면서 튜더 왕조의 왕들은 의회나 왕권의 균형을 비교적 잘 유지했지만 엘리자베스의 뒤를 이언 스튜어트 왕조는 그렇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이었다. 필요한 금액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했는데, 제임스 1세는 그를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의회를 소집했다. 하지만 의회는 왕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고 '헨리 헌장', '마그나 카르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