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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10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폭군 카라칼라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10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폭군 카라칼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후 , 혼란해진 정세를 평정하고 황제에 오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5현제 시대가 끝나고 코모두스에 의해 파탄에 이른 경제를 회복하고 군제를 개편하여 로마의 재부흥에 힘썻던 그의 행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고, 그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그의 아들인 카라칼라에 대해서도 잠시 알아보도록 하자! 146년 현재의 리비아 지역에서 태어난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기사계급으로 태어났다. 164년 18세가 되던 해, 당시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만나게 되는데, 세베루스가 마음에 든 아우렐리우스는 그가 25세가 되던 해부터 회계 감사관, 호민관을 거쳐 법무관에 선출되기까지 큰 도움을 준다. 아우렐..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9 현명했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9 현명했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121년에 태어나 3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었다. 어릴때부터 능력이 영특했던 아우렐리우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눈에 띄어, 136년 하드리아누스의 양자이자 첫번째 후계자인 루키우스 케이오니쿠스 코모두스의 딸인 케이오니아 아파비아와 약혼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아우렐리우스가 정계 전면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138년 코모두스가 폐병으로 사망하게 되고, 이어 하드리아누스는 안토니누스를 두번째 후계자로 삼는다. 하드리아누스는 안토니누스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전부터 눈여겨 보았던 아우렐리우스와 죽은 코모두스의 아들 루키우스 베루스를 양자로 입적하라 명령해 안토니누스..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8 위대한 하지만 쓸쓸했던 황제, 하드리아누스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8 위대한 하지만 쓸쓸했던 황제, 하드리아누스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이아누스와 같은 스페인 출신으로 로마 역사상 최대 영토를 가지게 된 로마 제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정복보다는 내정과 방위에 힘썼던 황제다. 지금부터 그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76년 태어난 하드리아누스는 85년 먼 친척뻘이었던 트라이아누스 황제가 그의 후견인이 되어 스페인 이탈리카 지역에서 로마로 거주지를 옮긴다. 18살의 나이에 로마 제국 2군단의 부관에 임명되면서 지휘관으로써의 발판을 마련했고, 96년에 제 5마케도니아 군단 지휘관, 97년 제 12프리미게니아 군단 지휘관으로 임명되면서 여러 공적을 세운다. 101년에는 황제의 측근에 발탁되어 개인 재무관을 지냈고, 105년에는 법무관,..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7 오현제의 시대를 연 네르바, 그리고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끈 트라이아누스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7 오현제의 시대를 연 네르바, 그리고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끈 트라이아누스 네르바는 도미티아누스의 암살 이후 원로원의 추대로 굉장히 많은 나이에 새 황제로 등극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트라이아누스, 하드리아누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지는 새로운 왕조, 안토니우스 왕조가 열리게 되었다.(루키우스 베루스, 코모두스도 있지만 오현제로 불리진 않는다.) 서기 30년 태어난 네르바는 원래 법학자로 활동했던 사람이었다. 이후 71년과 90년에는 집정관을 지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절에는 황제의 남색 상대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96년 폭정으로 인해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당하게 되고, 원로원의 추대로 황제에 오르게 되었다. 30년에 태어나 96년에 황제..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6 군웅할거시대를 평정한 새로운 혈통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6 군웅할거시대를 평정한 새로운 혈통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베스파시아누스는 태어날 때부터 거창한 신분의 인물이 아니었다. 차근차근 바닥부터 한단계 한단계 밟아 네로가 죽은 후,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에 의해 혼란한 로마를 수습할 인물로 선택되어 로마의 황제에까지 즉위하게 되는 인물이다. 지금부터 당시 로마의 혼란했던 정세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베스파시아누스는 세리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게 되는데, 신분상 로마제국 권력층 최상부에 오르기는 어려웠다. 자신의 형을 따라 공직에 입문해 36년에 트라키아 지방에서 군복무를 하고, 감사관으로 선출되어 크레타섬과 키레네에서 근무한다. 이후 39년에는 조영관, 40년에는 법무관에 선출된다. 41년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5 로마의 별이 되고자 했던 황제, 네로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5 로마의 별이 되고자 했던 황제, 네로 클라우디우스가 아그리피나에 의해 독살된 후,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로 등극시킨다. 그 때 네로의 나이 16세였다. 네로는 태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가 멀리 유배를 떠나게 되었고, 네로의 친부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결국 네로의 숙모인 레피다에게 맡겨진다. 레피다 역시 살뜰히 챙겨 보살피지 않았고, 무용수나 이발사 교육을 시켰다. 클라우디우스에 의해 유배지에서 로마로 돌아온 아그리피나의 권력이 강해지자, 네로도 로마로 돌아와 좋은 생활을 누리게 되었고, 황제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즉위 초기의 네로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귀찮은 일일 뿐이었다. 자신은 녹음 덮힌 언덕에 누워 시나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4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4 칼리굴라와 클라우디우스 로마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제정으로 들어서고 난 후, 그의 혈통에 의해 그 권력이 계속해서 옮겨지게 되는데, 그 황제들을 모두 이야기하자면 그 양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그들에 대해 정~말 간략하게 줄여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아우구스투스가 죽고 난 후, 그를 이어 황위에 오른 사람은 그의 양자인 티베리우스다. 티베리우스는 기원전 13년에 29세의 나이로 집정관에 오르게 되고, 기원전 6년에는 후계자 문제가 거론되자 원로원과 세간에 생겨날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자진해서 공직에서 물러나 로도스 섬에서 조용히 지내다, 4년 후에 로마로 복귀한다. 서기 14년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하고,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친 손자였던 가이우스와..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2 악티움 해전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2 악티움 해전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의 제 2차 삼두동맹이 맺어지지만 이내 붕괴되고, 로마의 1인자가 되기 위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다. 이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게 되면서 로마의 초대 황제에 오르게 되는데, 그 계기가 된 악티움 해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카이사르는 자신의 권력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암살되기 전, 그의 권력과 재산을 그의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 유언의 집행인으로 안토니우스를 임명하게 된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를 도와 갈리아 정복을 일선에서 이끈 최고의 장수중 한명으로 카이사르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사람이다. 하지만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1 로마의 제정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3-1 로마의 제정 로마가 공화정 체제를 마무리하고 제정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이름 역시 로마제국으로 불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로마제국은 옥타비아누스, 즉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시작한 기원전 27년부터 로마가 몰락할 때까지를 일컫는다. 로마제국은 지중해 동부의 헬레니즘 문화권과 이집트, 유대, 옛 카르타고, 히스파냐, 갈리아 등 기존 영토를 포함하여,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다키아 지방까지 그 영토를 확대했다. 이 영향으로 로마는 굉장히 부유해지게 되었으며, 로마제국의 문화를 지중해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되어, 로마제국의 건축과 법, 정치 등이 지금까지도 전해지게 되었다. 제정시대부터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황제라는 직책은 이전 공화정 시대에 있었던 호민관과 집정관의 특권을 .. 더보기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2 로마 공화정의 변화와 그 이유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2 로마 공화정의 변화와 그 이유 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초기의 공화정에서는 왕정의 몰락으로 소수 혈통 귀족에게 그 권력이 이양되었다. 기원전 5세기 중엽, 집정관이라는 고위 정무관직이 등장했으며, 임기는 1년이었고 두 사람을 선출했다. 이를 이두정치라고 하며, 원로원은 이때까지도 자문기구에 지나지 않았고, 켄투리아회는 선거, 입법, 재판 등의 기능을 수행했다. 로마에는 시민계급으로 귀족과 평민 두 계급이 존재했는데, 공화정 출범 당시의 귀족계급은 굉장히 폐쇄적인 형태였으며, 후에 평민 계급은 이에 반발하여 사회정의를 요구했다. 초기에는 모든 공직이 귀족들에게만 열려있었고, 평민이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때의 로마는 계속된 군사정복을 통해 이탈리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