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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5 3차 포에니 전쟁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2-5 3차 포에니 전쟁

 

 

바로 3차 포에니 전쟁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구요~!

 

 

3차 포에니 전쟁 당시 세력도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는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 일리리아, 시리아로 그 영토를 확대했고 히스파냐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다. 전쟁에 패배한 카르타고는 매년 로마에 물어야만 하는 막대한 배상금에 고통받고 있었다. 이런 고통을 안고 카르타고는 지중해 상에서 아프리카의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활용, 해상무역을 활발하게 하였고, 기원전 156년 이후부터 불과 5년만에 전쟁의 상처를 없애고 예전 못지않은 강성한 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로마는 카르타고의 이웃나라인 누미디아에 카르타고의 선박과 영토를 약탈하라는 은밀한 제안을 했고, 누미디아는 로마의 후원을 등에 업고 주기적으로 카르타고 영토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는다.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카르타고의 모든 영토분쟁은 로마 원로원의 중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카르타고는 자체적 군사행동을 하지 못했고 로마 원로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로마는 충분히 개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미디아의 일방적 방문이라는 결정을 내리며 카르타고의 제안을 거절한다. 기원전 151년부터 계속된 누미디아의 침입은 2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이로 인해 카르타고는 막대한 경제적 손해를 입게 되었다. 그렇게 때문에 카르타고는 누미디아의 침입을 정당화시키는 로마인들에 대한 강한 증오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카르타고는 결국 누미디아와의 국경분쟁에 대항하기 위해 6만명 규모의 용병대를 조직했고 누미디아가 침공하자 역공하여 누미디아 영토로 진입한다. 로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약위반으로 간주함과 동시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카르타고에 조사단을 파견한다. 당시 카르타고에서는 로마에 대한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있었는데, 강경파는 카르타고의 국력이 상당부분 회복되었기 때문에 로마와의 전면전에도 숭리할 수 있을 정도라는 주장을 했고, 온건파는 이미 누미디아의 습격으로 인해 경제적인 타격이 매우 커 로마와의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카르타고는 온건정책을 택하게 되고, 로마의 요청에 따라 누미디아를 공격한 장수를 처형하였고 로마에 사죄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냈으나 로마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프리카에서 강화회의를 강행한다. 이 강화회의에 파견한 장소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를 승리로 이끈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양손자였다. 그는 협상하러온 카르타고 대표단에게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조약에 두가지 조건을 달았다. 첫째는 카르타고의 모든 무기를 로마에게 넘긴다는 것이었다. 카르타고는 어쩔수 없는 상황에 카르타고에 있는 모든 무기를 로마에 넘겨주게 되는데, 칼과 창을 포함해 그 무기의 수가 10만개가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번째 조건은 수도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주민은 해안에서 15km 떨어진 곳으로 모두 이주하라는 것이었다. 로마의 도를 넘어선 조건에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결전을 준비했다. 이미 모든 무기를 넘겨 대항할 무기가 없었던 카르타고는 주변에서 농성전을 대비해 식량을 모았고, 나뭇가지나 성벽을 허문 바위조각, 심지어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석궁의 밧줄로 사용해 전투에 참전했다. 또한 로마와의 화평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형에 처했고, 로마와의 결전을 치르게 된다. 성안에 있었던 카르타고 군과 시민들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4만 정예병을 상대로 바위, 나뭇가지, 맨손으로 맞섰고 죽인 로마군의 무기를 빼앗아 대항하는 등 카르타고의 운명을 건 마지막 싸움이니만큼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기원전 149년부터 시작된 3차 포에니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 줄 알았던 스키피오의 예상을 완전이 뒤엎고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가 완전히 함락되기 전까지 무려 3년동안이나 이어졌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함락 이후 도시를 다시는 살 수 없는 땅으로 철저히 파괴한 다음, 불모지로 만들었다. 카르타고의 인구는 전쟁 전 25만에서 전쟁 후 5만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도 모두 노인이나 어린이, 여자들이었다. 로마군은 이들을 아프리카의 외진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로마의 병사들은 이 주민들을 노예로 팔려고 했으나, 스키피오가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3년동안 칼과 창 한자루 없이 맨손으로 자신의 조국을 위해 목숨바쳐 싸운 카르타고 인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고 한다. 이렇게 고대 카르타고의 해상 강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그로부터 약 150년 후, 아우구스투스가 그의 병사들이 은퇴 후 거주할 도시로 재건하게 되지만 예전의 영광을 다시 찾지는 못했다.

 

 

이렇게 고대 로마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전쟁 중 하나인 포에니 전쟁에 대해 알아보았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 이후 지중해 세계에서도 패권을 잡게 되었고, 마케도니아와 히스파냐, 아프리카 북부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성장에 일련의 성장통을 겪게 되는데 그 내용은 공화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설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쨋든 한니발과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로 대표되는 이 전투가 세계사에 길이 남는 전투였음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