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 바람.../역사 속 이야기

[영국] 천재과학자, 아이작 뉴턴 [영국] 천재과학자, 아이작 뉴턴 뉴턴은 1642년 12월 25일 영국 링커셔의 울즈소프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뉴턴이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3살때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재혼해서 잘 살다가 양아버지가 죽자 고향으로 돌아와서 함께 살았는데, 어머니는 뉴턴이 농부가 되기를 바랬고, 공부하는 것에 들어가는 돈을 아까워할 정도로 교육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평소에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그의 특별함을 알아본 외삼촌의 도움으로 1661년 캠브릿지 대학에 입학한다. 입학 후, 돈이 없어 학교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근로학생 자격으로 공부했다. 어릴적 그는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고, 공부했다. 캠브릿지 대학에 입학한 뉴턴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늘 메모를 했다고 한다.. 더보기
[영국] 중앙집권체제의 확립,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중앙집권체제의 확립,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인 헨리 8세가 만들었던 프로테스탄트, 즉 영국성공회와 카톨릭 간의 분쟁에 있어 중립적인 위치에 서며, 두 종교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했고, 중상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하여 영국의 절대왕정의 기초를 확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지금부터 그녀에 대해 알아보자. 엘리자베스 1세는 아버지인 헨리 8세와 그의 두번째 왕비인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헨리 8세는 첫번째 왕비였던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캐서린과 이혼하기를 희망했고, 그녀와의 이혼을 로마 교황이 허락하지 않자, 영국 성공회를 만들기까지 한다. 헨리 8세와 캐서린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메리였다. 그렇게 캐서린과 이혼을 하고 두번째 결혼을 .. 더보기
[재미있는 이야기] 도대체 왜~! 런던은 운전석이 오른쪽인가? [재미있는 이야기] 도대체 왜~! 런던은 운전석이 오른쪽인가?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해볼까 합니다. 도대체 왜~! 영국의 자동차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을까요? 생각보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옛~날 옛적, 그러니까 사람들이 마차를 많이 타고 다니던 시절, 영국은 마차를 주 교통편으로 이용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반적으로 오른손 잡이가 많았는데요. 마차를 몰던 마부도 마찬가지겠죠? 자, 예를 들어보도록 하죠. 마부가 마차에 손님을 태웠습니다. 그럼 오른손에 채찍을 든 마부는 어느쪽에 앉아 있었어야 할까요? 당연히 왼쪽입니다. 이유는 대부분 오른손잡이인 마부가 오른손에 채찍을 들고, 오른손으로 그것을 휘둘러야 하는데, 본인이 왼쪽에 앉아버리면 휘두르는 채찍에 손님이 맞을수도 있을뿐더러, 채찍 휘두.. 더보기
[피렌체] 메디치 가문에 대한 간략한 정리 [피렌체] 메디치 가문에 대한 간략한 정리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가 메디치 은행을 설립하고, 상인 가문이었던 메디치가가 은행으로 사업권을 넓혀놓았다. 그 때, 조반니 디 비치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장남이 '국부' 코시모 데 메디치, 차남이 '대' 로렌초 데 메디치 였다. 조반니 디 비치는 자신이 뒤를 이을 후계자로 장남인 '국부' 코시모 데 메디치를 지명하고, 그가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받은 코시모 데 메디치는 자신의 탁월한 상업능력을 이용하여, 메디치 은행의 저변을 확대하여, 유럽의 각 지방에 메디치 은행의 지점을 설치하였고, 로마 지점은 교황청의 금고 역할을 하여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문화, 예술, 학문 등에 적극적으로.. 더보기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왕후였던 자유로운 영혼, 시시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왕후였던 자유로운 영혼, 시시 엘리자베스 아멜리에 유진(Elisabeth amelie eugenie, 1837~1898), 애칭 시시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엘리자베스는 1837년 바바리아, 현재로 보면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공작이었던 막시밀리안 요세프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케롤라인(바바리아의 공작녀 루도비카, 사촌지간)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넷째로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그녀보다 3살이 많은 언니 헬렌과 달리 자유분방하고 외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아이들을 자유롭게 뛰어놀게 하면서 키우는 풍습에도 영향을 받았겠지만 아버지인 막시밀리안 요세프의 외향적 성격도 큰 영향을 끼친 듯 보입니다. 엘리자베스가 16살이 되던 해, 어머니인 루도비카 공작녀는 자신.. 더보기
[스페인]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란, 에스파냐 내란이라고도 하는 이 내전은 1931년 왕정이 무너지고 , 1936년 2월 총선을 통해 정교분리, 농지개혁 등의 정책을 내건 좌익이 승리하고 좌파 인민정부가 세워진 이후, 기득권 층의 반발에 의해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을 필두로 인민정부에 대항하는 우파 반란군을 조직하여 7월 17일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이 내전에 참여하게 되는데, 당시 나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살라자르의 포르투갈은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반란군을 원조하였고, 소련은 인민정부를 지원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불간섭이란 이름으로 인민정부를 지원하지 않았다. 이들의 면면만 보면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 양상을 띤 내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화국 내에서도 사회.. 더보기
[스페인] 엘 클라시코, 그 역사를 찾아서... [스페인] 엘 클라시코, 그 역사를 찾아서... 엘 클라시코는 세계 3대 더비 매치 중 가장 인기있는 더비매치다. 그 이유는 세계의 유명한 선수들이 모두 모인 구단끼리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팀간의 라이벌 구도에서 역사적인 사실이 숨어있다. 바로 정지척인 이유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스페인은 과거 왕이 통치했던 카스티야 왕국이었다. 그때만 해도 카탈루냐는 독립적인 민족으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1931년, 왕정이 무너지고 제 2공화정이 수립되면서, 1936년 2월 총선으로 새로이 집권한 정부가 개혁정책을 추진하게 되자, 당시 기득권 층에서는 군부를 등에 업고 군사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로써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내전이 시작되는데, 이 3년 간의 내전으로 약 50만명의 사상자가 났고.. 더보기
[영국] 원치않던 9일간의 재위, 레이디 제인 그레이. [영국] 원치않던 9일간의 재위, 레이디 제인 그레이. 1553년 7월 10일부터 단 9일간 재위한 명목상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여왕이다. 아버지는 도셋 후작인 헨리 그레이, 어머니는 프랜시스 브랜든이다. 프랜시스 브랜든은 헨리 8세의 여동생이자 잠시 프랑스의 왕비였던 메리 튜더와 서포크 공작 찰스 브랜든의 장녀였다. 후작 부부는 사냥과 파티를 즐기는 활발한 성격이었으나, 제인은 그와 정반대로 내성적이고 학구파였다. 어머니 프랜시스 브랜든은 딸의 나약함을 못마땅히 여겨, 자주 체벌을 가하고 심하게 꾸짖었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제인 그레이는 독서, 공부에 정열을 쏟았다. 그녀는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구사했고, 독실한 성공회 신자로서 신학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1546년 제인 그레.. 더보기
[바티칸 시국] 바티칸 시국의 중심,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바티칸 시국의 중심,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배당 중의 하나다. 이 성당의 이름은 1477년에서 1480년 사이 오래된 옛 예배당을 복원했던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 기간에 페루지노,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등 유명한 예술가들이 성당의 벽에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한 벽화를 그렸다. 그 이후, 율리우스 2세가 교황으로 있을 때,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위대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 역시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그린 미켈란젤로다. 그리고 이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가톨릭의 성스러운 행사가 진행되는데,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행사, 그것이 바로 콘클라베다. 시스티나 성당은 세계의 추기경.. 더보기
[체코]체스키 크롬노브, 그리고 이발사의 다리 [체코]체스키 크롬노브, 그리고 이발사의 다리 이발사의 다리 체스키 크롬노브의 라트란 1번지에 이발소가 있었는데, 그 이발소의 주인인 이발사에게는 예쁜 딸이 하나 있었다. 당시 체스키 크롬노브를 지배하던 사람은 바로 루돌프 2세라는 사람이었다. 그 루돌프 2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루돌프 2세는 빨리 아들을 장가를 보내 자기 손에서 떠나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로써는 말도 안되는 집안의 딸과 결혼시키게 된다. 결혼 상대는 바로 이발사의 딸이었다. 이발사의 딸은 루돌프 2세에게 시집가 루돌프 2세의 아들에게 한없이 잘해주고 챙겨주며 행복하게 살았다. 아버지인 이발사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그에게 시집간 딸이 안타깝고, 걱정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발사의 딸은 그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