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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바람.../역사 속 이야기

[스페인] 엘 클라시코, 그 역사를 찾아서...

[스페인] 엘 클라시코, 그 역사를 찾아서...

 

 

엘 클라시코는 세계 3대 더비 매치 중 가장 인기있는 더비매치다. 그 이유는 세계의 유명한 선수들이 모두 모인 구단끼리의 대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팀간의 라이벌 구도에서 역사적인 사실이 숨어있다.


바로 정지척인 이유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스페인은 과거 왕이 통치했던 카스티야 왕국이었다. 그때만 해도 카탈루냐는 독립적인 민족으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1931, 왕정이 무너지고 제 2공화정이 수립되면서, 19362월 총선으로 새로이 집권한 정부가 개혁정책을 추진하게 되자, 당시 기득권 층에서는 군부를 등에 업고 군사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로써 1936년부터 1939년까지 내전이 시작되는데, 3년 간의 내전으로 약 50만명의 사상자가 났고 이후에도 약 40만명이 숙청당했다고 한다. 이 내전의 승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은 파시즘(권위주의)을 기반으로 1939년부터 1975년 사망하기 전까지 무려 36년간 독재를 했다. 독재에 반발한 스페인 동부의 카탈루냐, 북부의 바스크 등이 분리 독립을 요구했으나, 철저한 스페인 통합주의자였던 프랑코 독재정권의 침략으로 독립은 커녕 기존의 자치권마저 박탈되었다. 이후 카탈루냐 지방은 정부에 대항한 반정부 독립운동을 진행하면서 둘의 사이가 나빠지게 된다. 당시에는 그들의 깃발과 언어사용을 금지시키기도 했는데, 단 한곳, 그들의 홈구장인 캄프 누에서만큼은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의 시민들은 FC바르셀로나를 자신의 분신과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프랑코 장군의 카스티야의 수도가 바로 마드리드였다. 당시 카탈루냐의 주도가 바로 바르셀로나. 내전 이후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두 도시간의 대결이 바로 '엘 클라시코'다. 더욱이 내전 당시 독재정권에 맞선 공화정부의 마지막 거점이었다고 하니 갈등이 생기지 않을수가 없는 환경일수도 있다. 프랑코 장군의 지배하에 있었던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 지방과 카탈루냐 지방 간의 지역갈등, 정치적 갈등은 아직까지도 각 지방을 대표하는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치열한 더비매치로 남아있다.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간의 전적은 총 221전인데, 그 중 884687패로 굉장히 팽팽하다. 누구를 중심으로 보던 말이다. 초반에는 레알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를 압도하는 경기를 펼쳤다. 그러다 한번은 레알마드리드가 FC바르셀로나를 111로 대파한 경기가 있었는데, 이후 이 경기에 군부가 개입해 바르셀로나 선수들에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후에 구단주의 직접적인 사과와 함께 무효처리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두 팀의 엠블럼을 살펴보자. 먼저 레알 마드리드.


레알마드리드는 1902년 창단된 팀이다. 엠블럼의 위쪽을 보면 왕관이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Real'이란 접두사는 왕립이란 의미다. 1920년 알폰소 13세가 '마드리드 CF'라는 팀에 붙여준 것이라 한다. 이후 엠블럼에는 왕관이 그려졌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1899년에 창단되었고 그들의 엠블럼에는 왕관이 없다. 또한 왼쪽위의 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가는 카탈루냐의 성인 'st.jordi(성 호르디)'를 의미한다. 그리고 오른쪽 상단의 노란바탕에 붉은 줄무늬는 카탈루냐 주의 국기를 나타낸다. 이국기는 카탈루냐 왕국이 카스티야 왕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할 당시 카탈루냐 국왕이 칼에 맞아 흘린 피를 그가 입고 있던 옷에 손으로 그린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