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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4-4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새로운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下)

[로마] 고대 로마 이야기 #.4-4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의 새로운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下)

 

 

막센티우스가 정벌되자 콘스탄티누스와 손을 잡았던 리키니우스가 그를 적대시하기 시작한다. 콘스탄티누스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314년 리키니우스를 공격하여 트라키아를 제외한 모든 동로마 영토를 빼앗았다. 그리고 323년 리키니우스를 격파하고 처형하였다. 콘스탄티누스는 다시 한번 하나가 된 로마의 황제가 되어 13년간 로마제국을 통치했다.

 

콘스탄티누스가 한 일들 중 대표적인 것은 막센티우스를 격파한 직후인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한 것이다. 수백년동안 많은 황제들로부터 탄압받아온 기독교를 공인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제부터 모든 로마인은 원하는 방식으로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 로마인이 믿는 종교는 무엇이든 존중을 받는다.'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기독교에게 특혜를 주는 내용이 아니라 로마인들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한 것이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수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까지 몰수되었던 교회의 재산을 모두 돌려주었고, 황제 자신의 사비를 털어 교회를 건립하기도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성직자들의 조언을 구했으며, 그에 따라 노예 처벌 금지법, 죄수 학대 금지법 등을 제정했고 321년에는 최초로 일요일을 휴일로 삼았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러한 일련의 행동에는 정치적인 의도도 숨어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325년 처음 개최했던 니케아 공의회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기독교의 최대 논쟁거리 중 하나인 '예수는 신인가? 인간인가?'에 대한 내용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신이라는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이어온 수많은 승리들이 신의 가호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로마를 통합시키는데 전통 종교보다 점차 대중들에게 힘을 얻어가는 기독교가 더 제격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황 및 기독교 사제들에게 '신이 보낸 자'라는 칭송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황권을 더 단단하게 하려는 의도도 숨어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어쨋든 이런 일련의 정책들로 기독교는 이후 로마를 정복하게 되는 민족들에게로 계속 이어져, 유럽의 기독교 문화가 현재까지 18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종교에 집중된 지원은 로마 전통종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를 피하기 위해 330년 콘스탄티누스는 수도를 로마에서 리키니우스가 본거지로 삼았던 비잔티움으로 옮긴다. 이런 조치에는 반발을 피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계속 쇠퇴해가던 서쪽의 로마를 버리고 동쪽으로 이주하여 그 곳의 풍요로운 환경을 더 개발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누스 사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도시'라는 의미의 '콘스탄티노플'로 개명되었다. 하지만 오랜기간 로마제국의 중심이었던 로마가 그 역할을 비잔티움에 빼앗기게 되자, 로마를 중심으로 하던 서로마는 급격하게 무너졌고, 결국 콘스탄티누스가 죽고 약 150년이 흐른 뒤 멸망하게 된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세례를 받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세례를 받으면 지금까지 지어왔던 죄는 씻어지지만, 그 순간부터 짓는 죄는 용서 받을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황제라는 자리가 나쁜 짓을 안하면 좋겠지만, 그럴수도 없는 자리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리해서 죽기 직전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337년 콘스탄티누스는 죽음을 맞이했고, 그의 시신은 황금관에 넣어져 콘스탄티노플의 '사도 성당'에 안치되었다.

 

콘스탄티누스가 죽고 난 후, 로마에는 다시 한번 피바람이 몰아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생전에 자신의 세 아들과 두 조카에게 부제의 지위를 주어 통치를 분담하게 하였다.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가 이전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4개로 분리하고 능력이 있는 자들에게 황제의 지위를 주어 통치하게 했고, 그로 말미암아 일어난 권력다툼으로 완전히 깨진 로마를 재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살아있었을 당시에는 그가 목적했던대로 잘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가 죽고 권력의 균형추가 사라지자 또 다시 그들간의 피튀기는 전투로 이어지게 되었고, 결국 율리아누스가 황제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진정되어졌다.

 

 

콘스탄틴 성인과 그의 어머니 헬레나

 

어찌생각하든 콘스탄티누스의 행적들은 이후 유럽 역사에서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앞서 이야기했듯이 바로 기독교의 공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가 지원했던 기독교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그 힘 또한 가공할 만하다. 또한 그는 기독교에서 '세인트 콘스탄틴'이라는 이름의 성인으로 추대되며 지금까지도 모셔지고 있다.

 

드디어~! 드디어~!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마지막으로 로마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기쁘다~!ㅠㅠ 다음번엔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오려 한다~! 그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