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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청원

[영국]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 1628) [영국]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 1628) 권리장전은 명예혁명과 관련을 갖는 것인데 반해 권리청원은 청교도혁명과 큰 관련을 가지는 인권선언이다. 1337년 시작된 백년전쟁과 1455년 장미전쟁 이후 봉건체제가 무너지고 영국 국교회의 정착으로 영국내 교황권이 몰락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대표되는 튜더 왕조는 중앙집권화를 이뤄냈다. 그러면서 튜더 왕조의 왕들은 의회나 왕권의 균형을 비교적 잘 유지했지만 엘리자베스의 뒤를 이언 스튜어트 왕조는 그렇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이었다. 필요한 금액을 세금으로 거둬들이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했는데, 제임스 1세는 그를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여 의회를 소집했다. 하지만 의회는 왕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고 '헨리 헌장', '마그나 카르타'.. 더보기
[영국] 최초로 문서화된 그들의 권리, 마그나 카르타 [영국] 최초로 문서화된 그들의 권리, 마그나 카르타 마그나 카르타는 흔히 대헌장이라고 하는데, 최초로 권리를 문서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잉글랜드의 땅을 모두 빼앗겨 실지왕(失地王)이라는 별명을 얻은 존이다. 잉글랜드는 헨리 1세와 헨리 2세 시절 비교적 평온했으나, '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십자군 원정의 무리한 진행, 사자의 심장은 가졌지만 영혼은 지니지 않았다는 평판 등, 그때부터 평민과 농노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리처드가 지방 영주와의 싸움 중 화살을 맞고 사망하자, 헨리 2세의 막내아들인 존이 왕위를 잇는다. 존은 탐욕과 권모술수로 즉위할 때부터 조카 아서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당시의 국가적 지위로는 잉글랜드가 프랑스로부터 봉토를.. 더보기